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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여왕은 1857년 있었던 세포이 항쟁의 주역 가운데 하나였으며 1
영국 동인도 회사의 지배에 대한 저항의 상징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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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ranasi // India // 1828-11-19 // Rani Laxumibai of Jhansi
락슈미 바이는 바라나시에서 1828년 경 태어났다.
그녀는 마하라쉬트라의 브라만 가정에서 자랐고
특이하게도 교육과 더불어 무술과 검술 훈련을 받았다.
락슈미 바이는 어린 나이에 잔시의 군주인 강가다르 라오와 결혼했으나
그녀의 남편은 후계자를 남기지 못하고 사망했다.
군주가 사망하기 직전 공식적인 힌두교의 전통에 따라 락슈미 바이는
남편의 왕좌에 후계자로 세울 수 있도록 한 소년을 입양했다.
당시 인도의 총독이었던 영국의 댈하우지 경은 입양된 후계자를 인정하지 않았고
실권의 원칙(Doctrine of Lapse)에 따라 자신의 결정은 정당하다고 주장하며
잔시의 영토를 즉시 합병했다.
락슈미 바이는 여왕의 궁전인 라니 마할을 나와 마을에서 떠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잔시의 여왕은 영토를 영국에 넘기지 않겠다고 결심하고
"나는 나의 잔시를 포기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1857년 세포이 항쟁이 일어나면서 그녀는 영국에 대항하는 주요 인물이 되었다.
그녀는 군대를 조직했으며 분델칸드 지역에서 영국군과 맞서는 임무를 맡았다.
몇 주 동안 전투가 이어진 끝에 영국이 잔시 요새를 점령했지만
락슈미 바이는 탈출하여 다른 반란군에 합류했다.
그들은 군사도시 괄리오르를 공격했고, 이곳에서 락슈미 바이는
입양한 아들을 끈으로 등에 묶은 채 남자처럼 차려입고 전투에 참여했다.
그녀는 적극적으로 영국 군사들과 전투를 치렀지만
결국 유탄에 맞아 치명적인 부상을 입었다.
- Indian Rebellion(of 1857). 영국은 동인도 회사를 통해 인도를 간접 통치했는데, 이 동인도 회사가 보유했던 군대의 '인도인 용병(세포이)'들을 중심으로 일어났던 반영 항쟁. [본문으로]